[리뷰] 복합적 사회 문제를 날 것으로 보여주는 연극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




몇 년 전, 요양보호사들을 인터뷰하기 위해 한 지역의 요양병원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요양병원은 보살핌이 필요한 질병을 앓고 있거나 임종을 앞둔 노인들이 입원하는 곳이다. 살아서 나가는 경우는 가족들이 집으로 모셔가는 것이 아니면 없다고 했다. 입원한 대부분의 노인들이 이곳에서 임종을 맞는다는 것이다. 비교적 건강한 노인들이 생활하는 요양원과 달리 병원이기 때문에 그렇다.


요양원과 요양병원은 차이가 있지만, 보호자를 대신해 노인들을 보호하는 곳이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예전에는 부모님을 이런 곳에 보내는 것은 버리는 것과 같다는 인식이 많았지만 요즘은 그렇지 않다. 시설이 좋아지기도 했고 자식에게 의탁해 볼 꼴, 못 볼 꼴 보이는 것보다 깔끔하게 요양원으로 향하는 나름 쿨한 노인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파킨슨병으로 돌아가신 외할머니 역시 요양원과 요양병원을 거치셨다. 외할머니는 자식이 여섯이셨고, 절반은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었다.


어쨌거나 노인 인구가 전체 인구의 20%에 가까워지는 초고령화 국가인 한국에서 가족 해체는 생각보다 빠른 것 같다. 미국의 퓨리서치센터가 2020년 여름 14개 선진국 국가를 대상으로 실시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가족 간 유대가 강해졌는가’ 하는 조사에서 한국은 최하위를 기록했다고 한다. 어느 나라보다 가족공동체가 강조되던 한국 사회에서 무서운 속도로 전통적 가치가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는 분석도 있다.


어머니와 아들을 통해 우리 사회 단면을 그린 2인극

연극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는 독일 극작가 하랄트 뮐러의 원작 ‘고요한 밤’을 이병훈 연출이 연극 무대에 올린 작품이다. 1986년 독일에서 방송극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다른 시대, 다른 지역의 정서를 담고 있지만, 동시대 가족 관계, 노인 문제, 세대 간 가치관의 변화 등 복합적으로 일어나는 사회 문제를 정제시키지 않은 날 것으로 들려준다. 



이야기는 양로원 방 안에서 시작되어 이곳에서 막이 내린다. 무대에선 크리스마스를 며칠 앞두고도 양로원에서 집에 가지 않는 노인들이 크리스마스 합창 연습을 하는 소리가 들려 온다. 잠시 후, 한 남자가 커다란 선물상자를 들고 양로원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온다. 어머니는 갑작스레 찾아온 아들 베르너를 보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해야겠다면 분주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아들은 집에 가는 것을 주저한다.


사실 이 모자의 대화가 심상치 않다. 두 사람의 대화는 대화라기보다 각자의 이야기를 쏟아내는 듯하다. 육류가공업으로 성공한 아들은 자신의 사업이 중요한 기로에 섰다며 하소연한다. 엄마는 자식들을 키우던 이야기, 남편의 이야기를 하는가 싶더니 다시 아들에게 반복되는 질문을 한다. 아들은 어머니의 이야기는 건성으로 넘기며 뭔가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눈치다. 어머니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앞뒤가 맞지 않는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어머니는 다시 크리스마스를 맞아 아들 집으로 갈 채비를 서두른다. 아들은 어머니에게 자신의 집엔 머무를 방이 없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사업 차 방문한 고객이 자신의 집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낼 예정이라는 것이다. 아들은 작정한 듯 말을 이어간다. 자신의 사업 확장을 위해 어머니 소유의 도축장을 팔았으며 서류에 사인해줄 것을 말이다. 어머니는 아들이 자신을 데리러 온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 더이상 아무런 질문도 하지 않는 어머니는 손자에게 전할 선물을 보내며 양로원 방 안에 홀로 남는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낯설기까지 한 이야기

이 작품은 양로원 방 안에서 이루어지는 2인 단막극이다. 이 극은 어떤 장소의 이동도 없으며 어머니와 아들 두 사람의 대화로만 진행된다. 관객들은 무대 위 방 안에 온 정신을 집중하게 된다. 평범하게 시작된 어머니의 행동은 시간이 지나면서 미세한 변화를 갖는다. 같은 질문을 반복하고 맥락 없는 이야기를 나열하기도 한다. 실제 일어나지 않은 일을 실제처럼 이야기하기도 한다.


어머니의 시선으로 마무리되는 극의 장면은 너무 현실적이어서 낯설기까지 한다. 연극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에는 아름다운 결말이 없다. 그렇다고 절정도 없다. 너무 현실적이어서 아프지도 않다. 자신의 목적을 이룬 아들은 어머니의 사인을 받은 계약서를 들고 양로원을 나선다. 최고 의료진에게 어머니의 진료를 맡기겠다는 말과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란 인사를 남기고.


이 작품은 지난 2월 17일부터 2월 27일까지 ‘늘 푸른 연극제 – 그래도, 봄’의 마지막 작품이었다. ‘늘 푸른 연극제’는 원로 연극인들을 기억하는 축제의 장이자 원로와 젊은 연극인들의 화합과 교류의 장이기도 하다. 올해로 여섯 번째 시즌을 맞은 이번 연극제는, 이번 시즌 대표 연극인으로 정욱 배우, 손숙 배우, 방태수 연출, 고 장남수 연출을 선정했다. 충무아트센터 중극장, JTN 1관, 씨어터 쿰 등에서 ‘물리학자들’(프리드리히 뒤렌마트 작/송훈상 연출), ‘몽땅 털어놉시다’(이근삼 작/주호성 연출), ‘건널목 삽화’(윤조병 작/방태수 연출), ‘메리 크리스마스, 엄마!’(하랄트 뮐러 작/원제 : 고요한 밤) 네 작품이 관객들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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